"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변호사를 의심해야 하는 이유
지난 해, 한 의뢰인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물었다. "이길 수 있나요?" 변호사로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5초 정도 답을 찾았던 것 같다. 그 사이 두 마음이 부딪쳤다. 의뢰인을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 그리고 섣부른 안심이 결국 의뢰인을 더 위태롭게 할까 두려운 마음. 그 5초의 갈등이 변호의 방향을 가른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점점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답이 위험할 때가 많다는 것. 의뢰인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그 한 마디가, 사실은 의뢰인을 위해 가장 신중해야 할 답이라는 것. 변호사가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이길 수 있다"고 답하는 변호사가 위험할 때
승소 가능성은 하나의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사건의 결과는 변호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의 함수다. 어떤 재판부가 사건을 맡는가, 검사가 어떤 시각으로 기록을 보는가, 상대방이 어느 시점에 어떤 카드를 꺼내는가,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증거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가. 이 변수들은 변호사의 능력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움직인다.
"승소 확률 90%"라는 답이 잠재적으로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답은 변호사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들을 마치 통제 가능한 것처럼 단순화한다. 의뢰인은 그 한 문장을 듣고 안심하지만, 실제로 그 안심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그리고 만약 그 사건이 10%에 들어가면, 그 10%는 의뢰인의 인생 전체가 된다. 통계의 10%와 한 사람의 인생의 10%는 같은 숫자가 아니다.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정직하게 답하려면, 결과의 확률을 약속하기 전에 먼저 변수의 지도를 그려야 한다. 무엇이 통제 가능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그 구분을 의뢰인과 함께 보는 일이 변론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사실상 변호의 절반이다.
변호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변호사가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있다는 사실이, 변호사가 책임질 영역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분명할수록,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의 정밀도가 변론의 본질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정밀도는 한계의 인정에서 출발한다.
변호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세 영역이다. 첫째는 사실관계의 재구성. 의뢰인의 기억과 자료를 의뢰인보다 더 정확하게 정리하는 일이다. 의뢰인이 잊은 시점을 메시지에서 찾아내고, 의뢰인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다듬은 부분을 미리 마주하는 일이다. 둘째는 법리의 정합. 같은 사실관계도 어느 조문, 어느 판례 위에 놓이느냐에 따라 변론의 결론이 달라진다. 셋째는 전략의 설계. 첫 진술의 어조, 증인 신문의 순서, 합의 시점의 선택. 이 세 영역의 정밀도가 변론의 실체다.
다시 그 의뢰인의 첫 질문, "이길 수 있나요?"로 돌아간다. 5초의 침묵이 지난 후 답했던 말은 이러했다. "결과는 약속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든, 변호인이 책임지는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영역만큼은 정밀하게 가져가겠습니다." 의뢰인은 처음에 다소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30분 정도 상담이 이어진 후, 의뢰인이 마지막에 한 말은 다른 결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해주는 분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길 수 있다'고 답하는 변호사보다,
'여기까지는 내가 책임진다'고 말하는 변호사를 만나라."
— 오정환 대표변호사 · 법무법인 화온 (前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고를 때 의뢰인이 진짜 알아야 할 것
변호사 선임을 결정하기 전, 잠재 의뢰인이 첫 법률 상담 자리에서 변호사를 평가할 수 있는 신호는 사실 단순하다. 자기 한계를 정직하게 말하는가, 그리고 한계 안에서 무엇을 책임지는가를 구체적으로 말하는가. 좋은 변호사는 결과를 단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수를 짚어주는 사람이다. 단기적으로는 덜 매력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훨씬 안전한 동행이다.
변호사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점검할 수 있는 한 문장이 있다. "제가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무엇인지 말씀드려도 될까요?" 이 한 문장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변호사를 만난다면, 그분은 자기 일에 대해 정직한 분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사건의 모든 변수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는 변호사를 만난다면, 그 자신감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처음 언급한 의뢰인의 사건은 약 1년 후 마무리되었다. 결과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의뢰인이 사건이 끝난 후 보내온 한 마디는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결과보다, 매 단계마다 변호인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 한 마디가 변호사 일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짚었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변호사를 고른다는 일은 결국 결과를 사는 일이 아니라, 정밀도를 위탁하는 일이다. 법정의 결과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의 함수로 정해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론의 정밀도는 분명히 변호사의 것이다. 그 정밀도를 누구에게 맡기느냐가, 의뢰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선택이다.
"이길 수 있다"는 답을 듣고 안심하기 전에, "여기까지는 내가 책임진다"는 답을 들을 수 있는 변호사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오정환 · 법무법인 화온 대표변호사